균열된 주체와 생성하는 생명, 그 사이에서 울리는 존재의 감각

김형길 작가의 개인전 ‘존재의 공명(Resonance of Being)’이 서울 종로구 인사동 관훈갤러리에서 2026년 3월 25일부터 5월 5일까지 열린다. 관훈갤러리 1, 2, 3층 전관을 사용하는 이번 전시는 작가가 오랜 시간 탐구해온 종이상자 작업과 최근 자연 재료를 결합한 신작을 함께 선보이며, 그의 조형 세계를 총체적으로 조망하는 중요한 전시로 자리한다.

김형길의 작업은 처음 마주할 때 질서와 반복의 세계처럼 보인다. 수없이 반복되는 작은 구조들은 화면을 가득 채우며 일종의 안정된 패턴을 형성하는 듯하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 질서는 완전하지 않다. 미세하게 흔들리는 격자, 일정하지 않은 밀도, 그리고 그 위를 덮고 있는 소금과 조개껍데기의 입자들은 이 구조가 끊임없이 무너지고 다시 생성되는 과정에 있음을 드러낸다.

이 지점에서 그의 작업은 자크 라캉의 사유와 깊이 연결된다. 라캉에게 인간의 주체는 결코 완전한 실체가 아니라, 언어와 상징 속에서 구성되지만 언제나 결핍을 내포한 존재다. 김형길의 격자 구조는 이러한 상징계의 질서를 닮아 있지만, 그 위에 얹힌 자연의 물질들은 그 질서를 끊임없이 침식하고 균열을 만든다. 즉, 그의 화면은 완성된 구조가 아니라 ‘결핍을 내포한 구조’, 다시 말해 끝없이 어긋나는 주체의 상태를 시각화한다.

동시에 이 작업은 질 들뢰즈의 철학과도 공명한다. 들뢰즈는 세계를 고정된 실체가 아닌 끊임없이 생성되고 흐르는 ‘차이의 장’으로 이해했다. 김형길의 화면 위에 흩어진 소금 입자와 조개껍데기들은 하나의 중심 없이 퍼져나가며 서로 연결되고 분기한다. 이는 위계 없는 네트워크, 즉 리좀적 구조를 형성하며, 존재가 하나의 고정된 형태가 아니라 다층적인 관계 속에서 생성되는 과정임을 드러낸다.

특히 작가의 고향인 통영 바다에서 채집된 재료들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조개껍데기와 고동은 이미 생명을 다한 존재의 흔적이지만, 동시에 또 다른 형태로 화면 위에 새롭게 배치되며 새로운 생명성을 획득한다. 소금 역시 결정 구조를 통해 자연의 질서를 드러내면서도 쉽게 부서지고 흩어지는 속성을 지닌다. 이 물질들은 생명과 소멸, 생성과 해체라는 시간의 층위를 동시에 품고 있다.

작가의 작업노트는 이러한 사유를 더욱 명확히 드러낸다. 그는 “나는 하나의 소금이고, 조개껍질이며, 바다이고 파동이다”라고 말한다. 이는 자아를 하나의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고 연결되는 흐름으로 이해하려는 태도다. 인간은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 자연과 물질, 시간과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구성되는 존재라는 인식이 이 작업의 핵심이다.

김형길의 화면은 조용하지만 결코 정적이지 않다. 수많은 입자들이 서로를 밀고 당기며 미세한 진동을 만들어내고, 그 진동은 관람자의 감각 속에서 다시 확장된다. ‘공명’이라는 개념은 바로 이 지점에서 작동한다. 보이지 않는 관계와 흐름이 서로를 울리며 하나의 장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 전시는 단순히 작품을 감상하는 자리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다시 감각하는 시간이다. 화면 앞에 서 있는 동안 우리는 묻게 된다. 나는 어디까지가 나인가. 그리고 나는 무엇과 연결되어 있는가.

결국 ‘존재의 공명’은 하나의 답이 아니라 하나의 경험이다. 그리고 그 경험은 조용히, 그러나 깊게 우리를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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